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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생활

Hoje, 포르투갈 14. 유럽에서 커트하기 (미라마 beach 인근)

by 호재 유럽 2023.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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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0. 바스쿠 다가마 쇼핑몰 미용실 간판

 


나는 주기적으로 단발병과 커트병에 걸린다.
커트머리를 한 일 년 정도 유지하다 죽어라 단발로 길렀는데
이제 또 커트병이 도졌다. 그것도 유럽 한복판에서.
유럽이라고 수그러들 병이 아님을 아는 나는 주변에 미용실을 찾아보았다.

 

다행히도 아파트 1층에 미용실이 있었다. 토요일도 영업을 한다기에 내려갔는데
closed란 팻말이 보였다. 그렇다고 단념이 된다면 커트병이라 불릴 수 없다.
그냥 I'm sorry, but ~ 을 외치며 오늘 머리를 자를 수 있냐고 물었다.

 

학생처럼 보이는 여자아이가 엄마가 장례식에 가셔서 언제 오실지 모른다고 했다.
(여기 사람들은 부재 시 이유로 항상 장례식 참석을 쓰는 듯하다. 진짜 일수도 있지만)
포르투갈 사람들 중 나이 든 사람들은 종종 외국인과의 대화를 꺼리는 사람도 있지만
젊은 사람들과 학생들은 은근히 반긴다. 영어를 써볼 기회가 온 것에 기뻐한달까.
아이는 전화번호를 남겨두고 가면 엄마가 오셨을 때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나는 기쁜 마음에 전화번호를 적어두고 연락을 기다렸다.
오후 2시쯤 3시 반에 올 수 있냐는 문자가 왔다. 나는 당연히 갈 수 있다고 하고

내가 하고 싶은 스타일의 사진을 보내주었다. 엄마에게 보여드려 하면서.

내가 하고 싶었던 엠마왓슨 스타일


무려 엠마 왓슨 스타일의 커트였다. 나도 안다. 내 얼굴은 엠마 왓슨이 아님을.
그러나 저 짧은 스타일이 너무 하고 싶었다. 한국에 있을 때는 그 어떤 곳에서도 해주지 않았던
스타일. 저런 미인도 자칫 찐따로 보일 수 있는 어마무시한 스타일이므로 평범한 내 얼굴에는
어림도 없다는 듯, 저렇게 잘라놓으면 복구도 할 수 없다는 듯, 아무도 해주지 않았던 스타일.
친절한 그 여자아이는 perfect라며 엄마에게 얘기해 놓겠다고 했다.

가게로 들어가니 푸근한 인상의 아주머니 두 분이 계셨다.

한분은 여자아이의 엄마인 원장님, 한분은 통역사역할을 해주실 영어가 조금 되시는 아주머니셨다.

하지만 내가 사진을 보여준 덕분에 우리 사이에 큰 의사소통은 필요치 않았고

시작하기 전에 나는 살짝 커트가격을 물어보았다.
유럽에서는 미용값이 어마무시하다는 풍문을 너무 많이 들은 탓이었다.
커트가격은 20유로였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아서 나는 흔쾌히 OK를 외치고 자리에 앉았다.

커트의 시작은 무심한 듯한 샴푸부터였다. 그냥 우리 엄마가 감겨주는 듯한

편안한 스타일의 샴푸를 해주시고 내가 커트의자에 앉자 다시 한번

사진을 보시고는 원장님은 거침없이 가위질을 시작하셨다.

오, 실력이 좀 되시는데. 처음엔 이렇게 느꼈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으셔서 이런 스타일도 많이 해보셨나 싶었다.

시작하기 전에 very short라고 하셨던 말을 귀담아 들었어야 했는데.
결론적으로 머리는 매우 매우 짧은 스타일로 완성이 되었다.

before
after

 

여기 커트스타일은 디테일이 좀 부족한 듯싶다.

프로페셔널한 손놀림이라기보다는 아마추어의 그것이랄까.

내가 enough를 외치지 않았다면 더 짧아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적당히 짧았을 때가 훨씬 괜찮았지만 이미 잘려나가고 없는

머리카락, 후회해 봤자 소용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왠지 모를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이제 복구되지 않는 머릿결을 살려보겠다고

한 시간씩 트리트먼트를 발라놓고 방치할 필요도 없고,

드라이는 수건드라이로 충분하며, 심지어 빗으로 빗어줄 필요조차 없어졌다.

말 그대로 남자들처럼 바로 감고 털고 나갈 수 있는 상태를 원했는데

소원을 이룬 셈이다.

원장님 이름이 상호명이다

 

여기 사람들은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은 아무런 편견 없이 받아들여주는 아량이 있다.
그게 나한테 어울리건 아니건, 남들이 흉을 보건 말건, 네가 원하는 것이었으니 그것으로 좋다는 느낌?
내가 머리를 자르고 나가니 평소 인심 좋은 인사를 건네시던

관리인 아저씨가 "따봉"을 외쳐주셨다. (정말로 친절하신 분이다)


이로써 유럽에서 커트도 해보는 소중한 경험을 하나 추가했다.

소문대로 커트 실력은 한국보다는 못했지만 가격은 그다지 사악하지 않았다.

(물론 동네 미용실이고 커트만 했기 때문이겠지만)
머리카락이 조금 더 자라면 내가 대충 다듬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머리가 짧아진 만큼 기분도 따라서 발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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