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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생활

Hoje, 포르투갈 22. 포르투갈에서 은행 대기시간 (Porto 체크카드)

by 호재 유럽 2023.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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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포르투갈 관공서나 은행에서의 업무 비효율에 대해서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한두 시간 기다리는 것은 기본이고, 두세 번 방문하는 것도 기본이며, 처리되기까지 한두 달 기다려야 한다는 등
한국인 마인드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불만을 토로하는 글들을 많이 보았었다. 
그럴 때마다 '그럴 수도 있지, 뭐.'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역시나 그것은 관찰자의 여유일 뿐이었다.
어제 바로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 황당함의 종합세트를 경험했다. 
 
어제의 일을 복기하면서 무엇이 잘못되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문제의 시작은 포르투 지점 은행담당자가 내 Debit card(체크카드)를 리스본지점으로 보낸 것부터 시작한다. 
원래는 내가 포르투 지점으로 가서 직접 찾을 예정이었는데 갑자기 리스본 지점으로 보냈다는 메일을 받았다.
그것에 대해서 먼저 물었어야 했는데 아마 내가 리스본으로 옮겼다는 말에 그쪽으로 보내줬나 보다 하면서
짐작하고 넘어간 것이 문제였을 것이다. 언제든지 그 지점에서 찾을 수 있다는 말에 나는 한 달 정도 뒤에 
리스본지점으로 찾으러 갔고 그것이 바로 어제였다. 


은행 폐점시간이 3시 반이니까 조금 넉넉하게 한 시반쯤 은행에 도착했다.

나의 대기번호는 26번이었고 대기 인원이 몇 명 있었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대기할 때 의자에 잘 앉지 않고 그냥 서있다. 그래서 은행 내부에도 의자가 거의 없다. 

 

나는 아이와 함께 가서 얼른 빈 의자에 앉아서 내 번호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한 사람 업무가 처리되기까지 거의 30분 정도 걸리는 것 같았다.

은행 내부에 점점 대기하는 사람들은 늘어가고 그럼에도 처리속도는 더뎠다.

익숙한 풍경인지라 그때까지만 해도 여유롭게 기다렸다.

 

그런데 24번 업무가 끝나고 갑자기 30번으로 번호가 건너뛰었다.

25번 아주머니와 나는 함께 은행직원에게 항의를 했다. 알고 보니 포르투갈 은행에서는

아이나 장애인에 대한 우선처리 규정이 있는 모양이었다.

 

25번 아주머니의 짧은 영어 설명에 겨우 이해를 하고 다시 앉아서 기다렸다.

노약자에 대한 우대라니 이해를 안 할 수 없는 상황 아닌가. 
다시 또 30분 정도 뒤에  25번 아주머니 차례가 되었다.

 

이제 다음이면 내 차례다 싶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번호가 다른 카테고리 번호로 넘어갔다.

내가 Customer service 라면 통장발급과 대출번호 쪽으로 넘어간 것이다.

25번 아주머니는 일을 보고 나가시면서 나를 걱정해 주셨다.

"what happens?"라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Good luck"을 빌어주시면서 은행을 나가셨다.

 

카드를 찾으러 온 것뿐인데, 이렇게까지 기다릴 일인가 싶었고,

중간에 직원에게 나는 카드만 찾으러 왔는데도 기다려야 하냐? 했지만

직원은 미안하다는 듯 웃으며 그렇다고 했다.

(알고 보니 어제는 휴일 전날이었고 직원 몇몇이 휴가를 가고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직원이 다 있어도 기다림은 비슷하다는 것이 반전포인트다.)

 

그렇게 또 한 30분을 더 기다려서 겨우 직원 앞에 앉았다.

나는 Debit card를 찾으러 왔다고 말하고 여권을 내밀었다.

직원은 한참을 알아보더니 카드가 여기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 건물에 은행지점이 3군데가 있다고 했다. 
헐, 뭐지. 같은 주소인데 지점이 2군데나 더  있다고?

그러면서 다른 지점에 보관되어 있는지 알아봐야 한다면서 더 기다리라고 했다.

 

나는 결국 3시 반 폐점 시간이 다 될 때까지 기다렸고 돌아온 답변은 카드가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잃어버린 건지, 발급이 안된 것인지를 물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시원치 않았다.

결국 카드가 없으니 여기서 새로 발급을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의 불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시스템이 연결되지 않아서 결국 나보고

수요일에 다시 오라는 것이었다. 택시까지 타고 가서 두 시간을 기다린 끝에 얻은

결론이 다시 오라였다. 너무 허탈해서 화도 나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담당해 준 직원들은 너무 친절했기에 화를 낼 수도 없었다.

 

내가 항의를 해야 할 사람은 애초에 카드를 나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리스본으로 보냈다고 한 포르투지점의 직원일 것이다. 
 


결국, 나도 한 번에 일을 처리하지 못하고 또다시 방문을 해야 하는 일을 겪게 되었다.

내가 외국인이기 때문에 일이 더뎠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지만

내가 본 다른 포르투갈 사람들도 은행 일이 빠르지 않은 것에 대해서,

또 매번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것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런데도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 서둘러 일을 처리하는 사람도 없고

기다리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다. 극단적인 비효율성을 눈으로 목격하는 순간이었다. 


아마도 그들의 삶의 방식이 우리랑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도 불만족스럽지만 달라지지 않는 것이리라. 무엇이 더 낫다를 논하는 것은 무의미할 것 같다.

 

또 하나의 다름을 보고 넘어가야 하는 경험이었다. 화도 나지 않는 황당함을 세트로 경험하고서

노천카페에 앉아서 칵테일을 한잔 마시고 있으려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 세상은 너무 아름다웠다. 모두가 평화로웠고

화가 난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냥 이런 분위기에 익숙해지는 게 정신 건강에 좋을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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